여기엔 그럴만할 이유가 있었다. 당시 한신(韓信)이 초왕으로 책봉되어 있었는데 그 한신에게 항우의 용장이었던 종리매(鍾離昧)가 있었다. 그 전에 종리매에게 전투에서 여러번 고전을 겪은 고조는 한신에게 그를 체포하도록 명령했으나 한신은 종리매와 친교가 있었던 관계로 오히려 그를 숨겨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자가 한신이 역심(逆心)을 품고 있다고 모함을 했는데 고조는 진평(陳平)의 계략을 좇아 행차를 구실로 제후의 군을 소집한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한신 자신은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고 고조를 배알하려고 하자 평소 술수가 뛰어난 종리매가 한신에게 속삭였다.
"고조가 초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네 집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네가 나를 죽여 고조에게 바친다면 자네도 얼마 못가서 죽음을 당할 걸세. 그런 생각을 다 하다니 내가 자네를 잘못 본 것 같으네."
라고 말하고는 스스로 목을 쳤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진으로 갔는데 과연 종리매의 예측대로 그는 반역죄로 체포되고 말았다. 한신은 분에 못이겨 울부짖었다.
"아! 교활한 토끼가 죽자 사냥개가 죽음을 당하고 비조(飛鳥)가 없어지자 양궁이 감추어지고 적국이 파멸되니 묘신이 망한다 (狡兎死良狗烹 飛鳥盡良弓藏 敵國破謀臣亡) 고 하더니 천하가 평정되어 두려운 적이 없어진 지금 교활한 토끼가 다 잡히면 충실한 사냥개가 삶겨져 주인에게 먹히듯이 온갖 충성을 다한 내가 이번엔 고조의 손에 죽는구나."